2013년 4월 23일 화요일

첫번째 심각한 농담; 만만한 게 커피



올 초 TV를 비롯한 거의 모든 뉴스매체에서 다루던 이야기입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4000원짜리 커피 원가는 123원!"
외우기도 쉬운 저 숫자 123. 원 투 th리.
'뭐 임마? 123원짜리를 4000원이나 받는다고?!'

ep의 첫번째 심각한 농담은 커피 가격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저 마법의 숫자 123은 올해, 그러니까 2013년에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거든요.
구글링을 해보면 2011년에 이미 한 차례 언론과 인터넷에서 한바탕 전쟁을 일으켰던 숫자입니다. 어쩌면 지금도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 중에 절반은 자신이 마시는 커피의 가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저 123원은 이호건 기자님 말마따나 생두 가격일 뿐이고, 유·무형의 가치가 더해져서 4000원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리포팅은 '원두 가격이 내리고 환율까지 떨어졌는데' 에 방점이 찍혔기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아니 그동안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린건요? 오른 전기요금은요? 환율과 원두 가격이 내리는 와중에 부자재는 올랐을 수도 있겠죠!

'4000 나누기 123 이면 얼마야. 대충 계산해봐도 서른배가 넘잖아!'
'내가 너한테 사주는 밥보다 비싼 저 커피가 사실 원가가 백원 언저리였니?'
'친구 만날 일만 없으면 여기서 이렇게 비싼 걸 마실 일이 없을텐데'
'겨우 백원 조금 넘는 저걸 마시려고 둘이 합쳐 만원 가까운 돈을 내가 써야한거니?'

분노는 치밀어 오릅니다.
아니 이 돈이면 당구가! PC방이! 플스방이! 하면서 말이예요 :(

담배 한 갑 2500원이지만 제세기금이 1600원선이지요. 
"담배 한 갑의 원가는 123원!"
이런 기사는 본 적이 없습니다. 온통 세금 얘기지요. 
농부가 땀흘려 지은 담배잎이 얼마에 수매되는가를 얘기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나요?

김밥천국에서 사먹는 라면이, 김밥이, 된장찌개가 원가는 이러이러한데!
이만큼이나 받다니 너무한거 아니야?
이런 얘기하는 사람 역시 없습니다.

유독 커피 원가 얘기만 나오면 그 똑똑한 기자님들도 임대료나 인건비는 아웃 오브 안중,
오로지 생두 가격에만 매달리는 건 무슨 까닭인가요?

개인이 카페 자리 빌려서 장사하는 거라면 서울에서 4000원에 팔던 아메리카노, 저기 시골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1500원에 팔아도 이익이 남을 겁니다. 왠만한 서울의 카페들 순수하게 음료만 팔아봤자 임대료 채우기에도 버겁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카페 사장님의 임대료에 소중하게 쓰입니다. 사장님에게 돈 벌어다 주는 건 커피가 아니라구요. 케익! 쿠키! 초콜릿! 빵! 이런 거라구욧!!

기사 하나에 너무 과민반응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요. 

결론은 임대료! 

아, 이번 글 카테고리가 심각한 농담입니다 :)





...........그럴리가...........

커피에 대한 원가논쟁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그것!
노동에 대해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습니다.

주문을 받고, POS를 찍고,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머신으로 커피를 뽑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이런 노동 말구요.

적어도 이제까지 저와 같이 일했던 바리스타들은
단지 맛있는 한 잔의 커피추출(이것만으로도 고민 한 바가지...)뿐 아니라
커피가 있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아메리카노? 아무리 뜨거워도 후후 불어가며 마신다면 10분에 끝내겠지요?
아이스 음료야 말할 필요가 없지요.

카페는 음료가 뚝딱 만들어지면 뚝딱 마시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커피를 가운데 두고 우린 시시콜콜한 추억을 얘기하고,
흐르는 음악에 귀를 귀울이고,
가지고 간 책에 빠져듭니다.

어쩌면 어느 카페에서는 소중한 러브레터가 쓰여지고 있겠지요.
힘들었던 하루의 끝, 잠깐 졸음에 빠질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바리스타들은 오늘도 테이블과 의자를 닦고,
주의깊게 선곡을 하고, 서가를 정리하고, 담요를 개어 얌전히 놓아두고 있을 겁니다.




그런 거 식당도 다 하는거라구요?

아니, 그런데 왜 언론에서는 식당 메뉴 원가 공개는 안한데요??





언젠가 이런 현수막을 본 적이 있어요.
커피값 아끼고 6주동안 지옥훈련! 올여름은 나도 몸짱이 될테다!!
(아 이걸 찍어놨어야 하는데)

겨우 커피나 만들어서 파는 바리스타 입장에서는, 
'아니, 6주간 커피 안 먹은 그 사람은 열통 터지겠네?'
이런 생각 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만만한 게 커피구먼.'

커피≒사치품
뭐 이 도식이 대충 맞다고 칩시다. 
그렇지만 당신이 화풀이 할 대상은 커피가 아니예요. 







세 줄 요약
1. 커피가격에서 생두는 얼마 안 함
2. 그거 가지고 까지 마셈
3. 임대료를 죽입시다. 임대료는 나의 원수

p.s : 이 포스트는 수시로 퇴고가 이루어 질지도 모릅니다












댓글 4개:

  1. 임대사업 하는 곳에서 일한 적 있는데, 정말 임대료 때문에 버텨내지 못하고 나가는 가게 참 많더라구요. 물론 건물 갖고 있으면 나가는 세금도 엄청나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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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업하기 좋은 나라보다 노동하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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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슴 한 켠이 아릿해져 오는 농담이네. 보통 내가 하는 일보다 남이 하는 일은 실제보다 약간 덜 어렵고, 덜 귀할 거라고 생각 하기도 하지. 삼겹살을 농사하신 목부가 받는 돈과 1인분 정량에도 자칫 미달하는 그 삼겹살 사이의 원가 타령을 통분하며 외쳐대도 아직은 그 벽이 견고함을 아시잖는가! 그걸 쓴 기자양반이라고 우리나라 물가의 원가구조를 모를 리 없다면 '뭔가 써야 먹고 사니까'라며 웃어버리시게. 말마따나 '살기 위한 농담'으로 치부하시면 안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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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쪽에만 치우치는 시선들이 아쉬운 마음에 써보았습니다. 농담을 농담으로만 받아들이기엔 너무 바쁜 세상이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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